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에 신작 '어쩔수가없다'로 돌아왔습니다. 2025년 8월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 영화는 상영 직후 기립박수를 받으며 해외 평론가들로부터 "광적으로 유쾌한 한국의 블랙코미디"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BBC를 비롯한 미국과 영국의 주요 매체에서 10여 명의 평론가가 만점을 줬고, 로텐토마토 신선도 지수도 90%를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9월 24일 국내 개봉 후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세를 보이고 있지만, 관객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이유와 함께, 관객 반응이 엇갈리는 배경을 심층 분석합니다. 베네치아와 부산 영화제에서의 상반된 반응, 이병헌과 손예진이 선보인 파격 연기, 블랙코미디 장르가 가진 양날의 검, 그리고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과 상징이 이번 작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상세히 다룹니다. 또한 원작 소설과의 차이점,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그리고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관람 팁까지 제공합니다.
베네치아에서 기립박수, 부산에서는 글쎄
'어쩔수가없다'는 2025년 8월 29일 제82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프로젝트로,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합니다. 베네치아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상영이 끝나자마자 관객석에서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고, 외신 기자들은 일제히 극찬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같은 영화가 한 달 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을 때 반응은 사뭇 달랐습니다.
해외 평론가들의 만점 행진
BBC는 "'올드보이'와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이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경제적 불안을 다룬 암울하면서도 웃긴 코미디를 공개했다"며 "광적으로 유쾌한 한국의 블랙코미디"라고 평가했습니다. 미국의 인디와이어는 "박찬욱의 가장 대담한 작품"이라며 A등급을 부여했고, 할리우드 리포터는 "블랙코미디의 정점"이라고 극찬했습니다. 로텐토마토에서는 미국과 영국의 10여 명 평론가가 만점인 100점을 줬으며, 종합 신선도 지수도 92%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박찬욱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상위권에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크린데일리는 "박찬욱이 '올드보이' 이후 가장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담아냈다"고 평가했으며, 버라이어티는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 존엄성을 유머로 풀어낸 역작"이라고 호평했습니다. 이들은 박찬욱 감독 특유의 화려한 미장센과 치밀한 구성, 그리고 배우들의 파격적인 연기를 극찬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해외 평론가들은 특히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초월하여 전 세계 노동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국내 반응은 극과 극
하지만 국내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한겨레는 "베네치아에서 외신 기자들의 반응이 열광이었다면, 부산에서의 반응은 상당수가 글쎄였다"고 보도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기자 시사회에서 일부 관객은 중간에 자리를 뜨기도 했으며, 상영 후 로비에서는 "너무 과했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반면 박찬욱 감독의 팬들은 "감독의 최고작"이라며 극찬했고, 영화평론가들도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습니다.
이러한 온도 차이는 영화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해외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블랙코미디 장르의 관점에서 접근하며 풍자와 유머를 즐겼지만, 국내 일반 관객들은 박찬욱 감독의 전작 '헤어질 결심'과 같은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영화를 기대했다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작품을 만나 당황한 것입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실직과 경제적 불안이라는 무겁고 현실적인 주제가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다뤄지면서 불편함을 느낀 관객도 많았습니다.
이병헌과 손예진의 파격 변신
'어쩔수가없다'의 또 다른 화제는 이병헌과 손예진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입니다. 이병헌은 25년간 근무한 제지회사에서 갑작스레 해고당한 평범한 가장 만수 역을 맡았고, 손예진은 그의 아내 미리 역을 연기했습니다. 두 배우 모두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중산층 가정의 절박한 부부를 실감나게 표현했습니다.
이병헌이 보여준 범죄 코미디의 정석
이병헌은 '악마를 보았다', '내부자들' 등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중년 남성으로 변신했습니다. 특히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하기로 결심한 후 벌이는 일련의 살인 시도 장면에서 그의 연기는 빛을 발합니다. 살인이라는 무거운 행위를 하면서도 계속되는 실수와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만수의 모습을 이병헌은 절묘하게 표현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병헌이 슬랩스틱 코미디를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며 "진지하게 살인을 시도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당황하는 모습이 오히려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만수는 첫 번째 타깃을 제거하러 갔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고, 두 번째 시도에서는 엉뚱한 사람을 쫓아가며, 세 번째에서는 예상치 못한 목격자와 마주치는 등 계속되는 실패를 경험합니다. 이병헌은 이러한 상황에서 당황, 절망,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집념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손예진의 현실적 아내 연기
손예진은 '사랑의 불시착', '뷰티 인사이드' 등에서 보여준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미지 대신, 생활에 찌든 중산층 주부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남편의 실직 후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 야근을 하고 부업을 하면서도 남편을 격려하고 가정을 지키려 애쓰는 미리의 모습은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남편이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거짓말하는 장면에서 의심과 믿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표정 연기가 일품입니다.
손예진은 인터뷰에서 "미리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여성"이라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남편의 선택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는 캐릭터"라고 설명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된 후 보여주는 미리의 반응은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로, 손예진은 말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배우 | 역할 | 이전 이미지 | 이번 작품 | 평가 |
---|---|---|---|---|
이병헌 | 해고당한 가장 만수 | 카리스마 강인한 남자 | 우스꽝스러운 범죄자 | 코미디 연기 발견 |
손예진 | 아내 미리 | 우아한 로맨스 여주인공 | 현실적 중산층 주부 | 섬세한 감정 표현 |
박희순 | 경쟁자 | 카리스마 악역 | 피해자 | 새로운 연기 스펙트럼 |
이성민 | 또 다른 경쟁자 | 중후한 조연 | 블랙코미디 캐릭터 | 장르 소화력 입증 |
블랙코미디라는 양날의 검
'어쩔수가없다'가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입니다. 블랙코미디는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금기시되는 주제를 유머와 풍자로 다루는 장르로, 웃음과 불편함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어쩔수가없다'는 실직과 살인이라는 무겁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소재를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웃어야 할까, 불편해야 할까
영화는 만수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들을 살해하기로 결심하는 장면부터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살인이라는 범죄 행위를 계획하는 주인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영화는 만수의 선택을 비난하지도, 그렇다고 정당화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그의 행동을 슬랩스틱 코미디 형식으로 보여주며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합니다. 살인 시도 장면에서 계속되는 실수와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웃음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이것이 진짜 살인이라는 사실이 불편함을 만듭니다.
한겨레는 "이 영화를 보는 건 안전벨트를 꽉 메고 광기 충만한 박찬욱 어트랙션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며 "캐릭터에 대한 쉬운 이입도, 그렇다고 안전한 거리감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연출 탓에 극 초반 멀미를 느낄 수 있다"고 평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영화 초반 20-30분 동안 영화의 톤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웃어야 할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는 것입니다.
박찬욱이 말하는 블랙코미디의 의도
박찬욱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노동자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계속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가 생각났다"며 "배우들이 연기할 걸 생각하니 점점 더 웃기는 쪽으로 갔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우울한 기조로 묘사한다고 비극성이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웃길수록 연민이 커지고 그 속에서 비극성이 드러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블랙코미디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설명입니다.
영화는 만수의 상황을 코미디로 그리면서도,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25년을 바친 회사에서 아무런 예고 없이 해고 통보를 받는 장면, 재취업 면접에서 나이와 경력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는 모습, 집에서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무너지는 순간들이 유머 속에 섞여 있습니다. 웃음 뒤에 숨은 씁쓸함과 분노를 느낄 수 있다면, 이 영화의 블랙코미디는 성공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어쩔수가없다'는 표면적으로는 한 개인의 범죄를 다루지만,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고발합니다. 만수가 살인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재취업의 어려움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노동자를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취급하는 시스템, 나이와 경력을 차별의 근거로 삼는 채용 관행, 그리고 실직이 곧 가정의 붕괴로 이어지는 사회 구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해고의 폭력성과 노동자의 존엄
영화는 만수가 해고 통보를 받는 장면을 매우 담담하게 그립니다. 인사팀 직원은 기계적으로 해고 사유를 설명하고, 만수는 말없이 듣다가 사무실을 나섭니다. 25년의 시간이 단 5분 만에 정리되는 이 장면은 어떤 설명보다 강력하게 해고의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한국 사회에서 중년 남성의 실직은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가장으로서의 정체성, 사회적 지위, 그리고 자존감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박찬욱 감독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어쩔 수가 없다'고 하는지 느끼길 바란다"며 "실직한 노동자가 느끼는 무력감과 분노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제목 '어쩔수가없다'는 바로 이 무력감을 상징합니다. 만수는 재취업을 위해 수십 군데에 이력서를 넣지만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간신히 얻은 면접에서는 "경력이 너무 많아 오버스펙"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탈락합니다. 그가 살인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은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절박함의 표현입니다.
경쟁 사회의 잔혹함
영화는 재취업 시장의 잔혹한 경쟁을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만수가 지원하는 한 회사는 단 한 명의 자리에 수백 명이 지원했고, 그중 최종 면접까지 올라간 5명이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만수는 이들을 제거하면 자신이 합격할 것이라고 계산하지만, 이는 경쟁 사회의 논리를 극단까지 밀고 간 것입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모두가 경쟁자"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특히 만수가 제거 대상으로 정한 인물들도 모두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노동자들입니다. 이들 역시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재취업을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만수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제거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는 노동자끼리 경쟁하게 만들어 진짜 문제인 시스템을 은폐하는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영화가 진정으로 비판하는 것은 만수 개인이 아니라, 그를 이런 선택으로 내몬 사회 구조입니다.
박찬욱 미장센의 진화
박찬욱 감독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화려하고 상징적인 미장센입니다. '올드보이'의 복도 롱테이크, '아가씨'의 탐미적 공간 연출, '헤어질 결심'의 물을 활용한 시각적 은유 등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깁니다. '어쩔수가없다'에서도 박찬욱 특유의 미장센은 여전히 작동하지만, 이전 작품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일상 공간의 낯설게 하기
'어쩔수가없다'의 배경은 대부분 평범한 일상 공간입니다. 만수의 집, 회사 사무실, 도서관, 카페, 공원 등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장소들입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이 평범한 공간들을 독특한 구도와 조명, 카메라 워크로 낯설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만수가 집에서 살인 계획을 세우는 장면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앵글로 촬영되어, 마치 실험실의 쥐를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일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일상적 행위가 만드는 괴리감을 극대화합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원에서 살인을 모의하고, 조용한 도서관에서 독극물을 준비하며, 밝은 대낮 주택가에서 범행을 시도하는 장면들은 공간과 행위의 부조화를 통해 블랙코미디의 효과를 높입니다. 평범한 공간일수록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행동이 더욱 부각되는 효과입니다.
과잉된 상징의 양면성
아시아경제는 '어쩔수가없다'를 두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유독 상징이나 미장센의 사용이 많은 작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영화 곳곳에는 의미심장한 상징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만수의 집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 벽에 붙은 아이들 상장, 아내가 가꾸는 화분, 만수가 모으는 신문 기사 스크랩 등은 모두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행복과 그것이 무너지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일부 평론가들은 이러한 상징의 과잉이 오히려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고 지적합니다. 상징을 읽어내는 데 집중하다 보면 이야기의 흐름에서 이탈하게 되고, 모든 장면이 무언가를 의미하려 하다 보니 관객이 편하게 영화를 즐기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특히 박찬욱 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나 블랙코미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이러한 연출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팬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를 여러 번 보는 재미를 찾습니다.
원작 소설과의 차이점
'어쩔수가없다'는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합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원작의 기본 설정만 가져오고 거의 모든 것을 한국적 맥락으로 재해석했습니다. 한겨레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와 이를 원작으로 만든 박찬욱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제목만큼이나 많은 것이 다른 작품"이라고 평했습니다.
미국 백인 중년 남성에서 한국 가장으로
원작 소설의 주인공은 미국의 백인 중산층 남성으로, 1990년대 미국의 구조조정 물결 속에서 실직한 인물입니다. 그는 매우 냉정하고 계산적인 성격으로, 살인을 마치 비즈니스 프로젝트처럼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합니다. 반면 영화의 만수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불완전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살인을 결심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과정에서 계속 실수하고,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가족에 대한 사랑과 범죄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강하게 반영되었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체면과 자존심, 집에 대한 집착, 그리고 나이와 경력에 대한 차별 등은 한국 중년 남성이 겪는 특수한 압박입니다. 만수가 가족에게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거짓말하고 매일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척하는 장면은 원작에는 없는 설정으로, 한국 사회에서 실직이 가지는 무게를 잘 보여줍니다.
블랙코미디로의 전환
원작 소설은 블랙코미디라기보다는 심리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주인공의 내면 독백을 통해 그의 심리 변화를 추적하며, 살인의 과정을 사실적이고 긴장감 있게 그립니다. 반면 박찬욱 감독은 이를 블랙코미디로 완전히 재해석했습니다. 살인 시도 장면에서 슬랩스틱 요소를 강하게 넣었고,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에 유머를 더했으며, 상황의 아이러니를 극대화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원작을 읽으면서 이게 코미디로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비극을 코미디로 그릴 때 오히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원작보다 훨씬 더 명랑하고 에너지가 넘치지만, 동시에 더 씁쓸하고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박찬욱 감독의 장기인 장르 변주와 재해석이 다시 한번 성공적으로 작동한 결과입니다.
구분 | 원작 소설 액스 | 영화 어쩔수가없다 |
---|---|---|
배경 | 1990년대 미국 | 2020년대 한국 |
주인공 성격 | 냉정하고 계산적 | 불완전하고 인간적 |
장르 | 심리 스릴러 | 블랙코미디 |
톤 | 어둡고 긴장감 있음 | 밝지만 씁쓸함 |
사회 비판 | 미국 기업 문화 | 한국 자본주의 |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관람 팁
'어쩔수가없다'는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지만, 올바른 마음가짐과 기대치를 가지고 보면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박찬욱 감독의 전작을 알고 있다면 이 영화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은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실전 팁입니다.
헤어질 결심을 기대하지 말 것
가장 중요한 것은 '헤어질 결심'과 같은 영화를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멜로 스릴러였지만, '어쩔수가없다'는 정반대입니다. 감정 이입의 여지를 거의 주지 않고, 캐릭터와 거리를 유지하며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영상과 낭만적 분위기 대신 날것의 현실과 불편한 웃음이 있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영화를 즐기는 첫걸음입니다.
오히려 '올드보이'나 '박쥐'처럼 박찬욱 감독의 초중반 작품들과 비교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들 작품도 폭력과 광기를 다루면서 동시에 블랙 유머를 섞었고, 캐릭터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관객에게 맡겼습니다. '어쩔수가없다'는 이러한 박찬욱 감독의 본령으로 돌아온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블랙코미디 장르 이해하기
블랙코미디를 처음 접하거나 익숙하지 않다면, 영화를 보기 전에 장르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블랙코미디는 웃음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장르로, 관객에게 도덕적 딜레마를 던집니다. "이 상황에서 웃어도 되나?"라는 질문 자체가 블랙코미디의 핵심입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고, 그 불편함 속에서 사회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영화를 보면서 "웃어야 하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된다면, 그것이 정상입니다. 감독이 의도한 반응입니다.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를 원한다면 이 영화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편한 웃음 속에서 사회를 성찰하고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원한다면, 이 영화는 최고의 선택입니다.
상징과 디테일 찾기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한 번 보는 것으로는 모든 것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화면 곳곳에 숨겨진 상징과 복선, 그리고 세밀한 디테일들이 있어 여러 번 볼수록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쩔수가없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수의 집에 걸린 그림, 아이들이 하는 놀이, 배경에 흐르는 음악, 그리고 캐릭터들의 의상 색깔까지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관람에서는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과 캐릭터의 변화에 집중하고, 두 번째 관람에서는 화면의 디테일과 상징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특히 만수가 경쟁자들을 관찰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일상이 만수 자신의 과거와 얼마나 닮아있는지, 그리고 그가 이들을 제거함으로써 사실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면 영화의 깊이를 더 느낄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평론가와 관객 사이에서, 그리고 관객들 사이에서도 극명하게 의견이 갈리는 영화입니다. 베네치아에서 기립박수를 받고 해외 평론가들로부터 만점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립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 자체가 이 영화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안전하고 편안한 영화는 논쟁을 만들지 않습니다. 불편하고 도전적인 영화만이 관객들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며,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게 합니다.
'어쩔수가없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겪는 구조적 폭력을 블랙코미디라는 형식으로 날카롭게 비판하며, 동시에 우리 모두가 얼마나 자주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하며 현실에 굴복하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이병헌과 손예진을 비롯한 배우들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 박찬욱 감독 특유의 화려한 미장센과 상징, 그리고 웃음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톤은 분명 호불호를 가르지만, 한국 영화사에 또 하나의 강렬한 발자국을 남길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도 성공한 이 영화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논쟁과 재평가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공식 참고 링크 안내
나무위키 - 어쩔수가없다 나무위키 - 박찬욱 BBC 어쩔수가없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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